사업부 영업을 총괄하는 임원과 나눈 코칭대화의 한 장면이다. 쏟아내야 할 말이 많으신 분임을 아는지라 진심으로 듣고 공감했다. 그 후 툭 던진 코치의 질문에 흠칫 놀라며 고객에게 작은 전환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업에서 흔히 '숫자'라고 표현하는 정량적 경영목표는 임원의 어깨 위엔 더 무게감 있게 올려진다. 특히 코칭 고객은 코로나 팬데믹에 마이너스 영향을 받은 데다 숫자 캐치-업(Catch-up)을 해내야 하는 사업부의 주관 임원이다 보니, 느끼고 있는 압박감이 목소리에 전해져 왔다.
고객은 예상치 못한 코치의 질문을 받고 처음으로 상사인 사업부장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결과 목표 달성만을 강조한 상사를 걸림돌로 생각해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상사의 성공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행동에 관한 생각을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련 부서 임원들에게 협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사업부장님은 모든 숫자에 대한 책임을 영업에 물으시니..."
코칭 중반쯤 고객이 말했다. 상사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도 숫자 총괄 책임 임원으로서 느끼는 답답함과 서운함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힘들어하는 고객에게 마셜 골드스미스의 『라이프 스토밍』에 나오는 불교 우화를 나누며, 흐르는 감정의 강물 위에 '빈 배' 한 채를 띄웠다.
어느 무더운 날, 젊은 농부가 배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농작물을 마을에 배달하기 위해 땀범벅이 된 채 노를 저었다. 해가 지기 전에 농작물을 마을에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배 한 척이 그의 앞쪽에서 강물을 따라 빠른 속도로 그의 배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농부는 맹렬히 노를 저어서 피하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방향을 바꾸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 배와 부딪혀요."
농부가 크게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배는 농부의 배 쪽을 향해 다가왔고, 결국 굉음을 내며 두 배가 부딪쳤다.
"멍청이 같으니라고! 이렇게 넓은 강에서 어떻게 내 배와 부딪힐 수 있어?"
젊은 농부가 울부짖었다. 그리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질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배 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류용 밧줄이 풀려 강물을 따라 표류해 내려오던 텅 빈 배에 대고 농부는 혼자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우화는 우리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준다. 일상에서 우리는 나를 향해 오는 배에 누군가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화를 내거나 희생자인 척한다. 그런데 배 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 침착하게 대응하며 속상해하지도 않는다. 즉, 나를 향해 돌진해오는 배가 '빈 배(Uncontrollable)'라는 걸 인식하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controllable)'에 집중할 수 있다.
삶은 빈 배다. 기업은 특히 빈 배 계류장이라 할 만치 다채로운 빈 배가 이곳저곳 부딪혀 온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는 매 순간 '아, 빈 배구나!'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그다음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controllable)에 집중하여 최선을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고객님께 다가오는 배는 빈 배인가요, 사람이 타고 있는 배인가요?"
"음... 빈 배에 가깝겠네요."
"그렇다면 고객님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제서야 코치님의 말씀을 이해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사업부장님의 디딤돌이 되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하겠지요."
고객과 '빈 배' 우화를 나눈 뒤 이어진 질문과 대답이었다. 주어진 상황을 상대방, 즉 상사의 관점으로 직시한 다음 쉽지 않겠지만 상사의 디딤돌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모색한 후 세션을 갈무리했다.